[문지기들] 1. '영원의 문' 순간을 지배하는 이들

# 1.
2025년 8월 13일 오후 9시(현지 시각) 이탈리아 우디네 스타디오 프리울리. 50번째 UEFA 슈퍼컵의 단판 승부가 막바지로 치닫는다. 2024-25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파리 생제르맹(PSG)과 유로파리그 우승팀 토트넘 홋스퍼가 1-1로 팽팽히 맞선 후반 82분.
토트넘 주장 손흥민을 향한 동료 크리스티안 로메로의 절묘한 롱패스. 손흥민은 페널티 박스 바로 밖 왼쪽 측면, 이른바 '손흥민 존'에서 볼을 잡는다. PSG 수비수 아슈라프 하키미가 바짝 따라붙지만 손흥민은 헛다리 스킬 시전, 빠른 터치로 그를 따돌리고 공을 오른발 앞에 놓는다.
"지금이야."
순간, 손흥민은 몸을 굽혔다 펴며 오른발 인사이드로 공을 감아찬다. 특유의 손흥민 존 감아차기 강슛. 공은 손흥민의 발끝을 떠나며 부메랑처럼 휘어져 골문 오른쪽 상단을 향해 돌진한다. 숨 죽이고 지켜보는 관중석에서는 '골, 골' 함성이 일제히 터져 나온다.
PSG 골문을 지키는 문지기, 수문장인 골키퍼 잔루이지 돈나룸마는 손흥민이 패스를 받아 드리블을 치는 순간, 이미 중심을 왼쪽으로 살짝 옮긴 상황. 키 196cm, 팔 길이 93cm의 돈나룸마는 마지막까지 공의 궤적을 눈으로 쫓는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왼팔을 쭉 뻗으며 몸을 던진다.
손흥민의 감아찬 공은 돈나룸마의 손가락끝에 겨우 스치며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살짝 벗어난다.돈나룸마의 핑거팁(fingertip), "와아아!" "아~" 경기장은 숨을 돌린 PSG 팬들의 탄성과 토트넘 팬들의 탄식이 교차된다.
8월 열릴 UEFA 슈퍼컵을 미리 상상한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문지기, 골키퍼다.
골키퍼는 축구 경기의 마지막 보루다. 열 명의 동료들과는 다른 색 유니폼을 입고, 유일하게 손을 사용해 골문을 지킬 수 있는 존재다. 그들의 뒤에는 아무도 없으며, 실점은 오롯이 그들의 책임이다. 상대 팀의 골은 관중의 환호로 이어지지만, 그 한 골을 막아낸 골키퍼의 선방은 경기를 뒤흔든다.
골키퍼의 역할은 단순히 공을 막는 것을 넘는다. 그들은 팀의 마지막 희망이자, 패배를 막아내는 수호자이며, 때로는 한 경기의 주인공이 된다.
전후반 90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은 평온할지라도, 골키퍼에게 중요한 것은 단 몇 초의 순간이다. 경기의 흐름은 한 번의 세이브로 바뀌며, 그 순간은 평생의 기억으로 남는다.
골키퍼에게 90분의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평온할 수 있지만, 단 몇 초의 순간이 경기 전체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는 그리스 철학의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개념과 비슷하다.
크로노스가 양적인 시간의 흐름을 의미한다면, 카이로스는 질적인 순간, 즉 결정적인 기회의 시간을 뜻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마치 이 개념을 골키퍼에 대입시키듯 "순간은 영원의 문"이라고 설파했다.
골키퍼가 경험하는 세이브의 찰나는 바로 이런 영원으로 가는 순간을 담고 있다. 공이 골대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막는 찰나의 핑거팁, 골키퍼는 이 순간에 시간의 주인이다. 문지기들이 보여주는 이 찰나의 순간은 축구의 가장 아름다운 몸짓 중 하나다.
골키퍼는 경기에서 유일하게 손을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규칙의 차이를 넘어, 골키퍼만이 경기를 바꿀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골키퍼의 한 손끝이, 한 번의 점프가, 한 번의 몸을 던짐이 팀을 패배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낸다. 그 순간 골키퍼는 영웅이 되며, 팬들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진다. 그들의 이야기는 승리와 패배를 넘어, 용기와 헌신,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보여준다.
골키퍼는 경기 내내 홀로 긴장 속에서 기다린다. 동료들이 공격에 나설 때도 그는 골문 앞에 홀로 남아, 상대의 역습과 예상치 못한 슈팅에 대비한다. 골키퍼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한 번의 실수가 경기의 승패를 가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 무게를 견디며 90분을 버티고, 결정적 순간이 오면 주저 없이 몸을 던진다. 이들은 팀을 위한 헌신과 책임감으로 뭉친 선수들이다.
때로 골키퍼의 희생은 팀의 승리를 위한 중요한 순간이 된다. 공에 맞은 몸이 아플지라도, 골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몸을 던진다. 부상의 위험 속에서도 공을 끝까지 쫓아가는 모습은 팬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골키퍼의 세이브는 단순히 공을 막는 것이 아니라, 팀 전체의 사기를 살리고, 경기의 흐름을 바꾸며, 상대 팀의 기세를 꺾는다.
골키퍼의 본능과 판단력은 경이롭다. 상대 선수의 발끝을 떠난 공이 골문으로 향하는 순간, 골키퍼는 공의 궤적, 슈팅 속도, 회전, 그리고 상황을 한 번에 계산한다. 동시에 몸은 본능적으로 반응해 공을 향해 움직인다. 이러한 순간의 반응은 오랜 훈련과 경험의 결과이자, 타고난 감각의 결합이다. 골키퍼가 보여주는 놀라운 반사 신경과 순간 판단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문지기들]은 레전드와 현역 최고의 골키퍼들을 살펴 본다. 레프 야신, 고든 뱅크스, 디노 조프, 피터 슈마이켈, 올리버 칸, 지안루이지 부폰, 마누엘 노이어, 알리송 베커, 티보 쿠르투아, 잔루이지 돈나룸마 등 세계 최고의 골키퍼들의 이야기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넘어, 끝까지 자기 문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와 용기를 보여주는 문지기들의 스토리.
가장 고독한 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드는 이들에 대한 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