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수습사원 미채용, 해고 수준으로 해야"

서울행정법원이 수습사원의 본채용 거부 시 명확한 해고 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기업의 채용 절차와 수습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향후 기업과 근로자 간의 갈등을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수습사원 A씨, 부당해고 소송 승소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김준영 부장판사)는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2023구합77993)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2022년 11월 16일 토공사업체 B사와 공사현장 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했으며, 계약서에는 "3개월 수습기간 후 평가에 따라 본채용을 결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B사는 2023년 1월 16일 A씨에게 수습 기간 중 업무능력, 태도, 기타 실적 등을 고려해 본채용에 불합격되었다고 통보했고, 2월 15일까지 기존 업무를 마무리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A씨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으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기각되었고, 결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수습기간 평가, 공정해야"
법원은 A씨의 근로계약이 시용근로계약(채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시험적 근로 계약)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본채용 거부 과정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근로기준법 제27조에 따르면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하며, 이는 근로자의 권리 보호와 공정한 절차 보장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B사가 A씨에게 보낸 본채용 거부 통보서는 '업무능력, 태도, 실적 등을 고려해 본채용을 거부한다'는 내용이 전부로,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능력이나 태도가 부족했는지 명시되지 않았다"며 "이러한 기재만으로는 해고 사유를 분명히 알 수 없어 적정한 대응이 어렵고, 사후 분쟁 해결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판결했다.
또한 법원은 수습사원의 평가 과정 자체도 공정성이 결여됐다고 지적했다. A씨를 평가한 인사 담당자들은 최소 이틀에서 한 달가량만 함께 근무했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에 부족한 시간이었으며, 평가 결과도 A씨에게 제공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절차적 하자가 A씨의 본채용 거부를 무효화하는 요소가 된 것이다.
◆기업과 근로자, 무엇을 유의해야 하나
이번 판결은 수습사원의 본채용 거부가 기업의 일방적인 판단에 따라 진행될 수 없으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절차가 필수적임을 명확히 했다. 법원은 기업이 수습사원을 평가할 때에는 ▲명확한 평가 기준 수립 ▲충분한 근무 기간 보장 ▲평가 결과의 투명한 공유 ▲서면을 통한 구체적 해고 사유 통지 등의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근로자 입장에서도 수습 기간 동안 자신의 업무 능력과 태도를 증명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평가 절차에 대해 기업에 명확한 설명을 요구하고, 본채용 거부 시 부당함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노동위원회나 법원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향후 수습사원의 근무 환경과 평가 기준 개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