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 '죽음=돈'…문제투성이 상조업계

지난 10일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는 "죽음은 곧 돈"이라는 상조업계 비즈니스의 민낯을 다시 보여줬다.
웅진프리드라이프, 보람상조개발, 교원라이프, 대명스테이션 등 4개 주요 상조업체가 '가전제품 무료 제공'이라는 미끼로 소비자를 속여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거다.
이는 상조 계약의 본질적 문제들을 꼼꼼히 들여다 보게 만든다.
몇몇 업체의 일탈이 아닌 상조 시장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2021년 1월부터 2024년 6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프리미엄 가전 증정', '무료 혜택', '최신 프리미엄 가전 100% 전액 지원' 등의 문구를 사용하며 소비자를 유인했다. 그러나 광고와 달리, 가전제품을 받기 위해서는 상조 계약과는 별도로 할부매매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심지어 가전제품 대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12년에서 20년에 이르는 상조 계약 만기까지 모든 납입금을 완납하고, 그 기간 동안 상조 서비스를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조건이 숨겨져 있었다.
상조 서비스의 본질이 미래의 불확실한 사건, 즉 가족의 죽음에 대비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이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복잡하고 까다로운 조건들은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고지되지 않았다. 12년에서 20년에 이르는 긴 상조 계약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상조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은 상조 서비스의 본질적 목적을 생각해볼 때 현실성이 떨어지는 조건이었다. 결국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무료' 가전제품에 대한 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하게 되는 구조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러한 행위가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제28조 제1항 제4호에 명시된 금지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보통의 주의력을 가진 일반 소비자들로 하여금 아무런 제한이나 비용 없이 가전제품을 무료로 받는 것으로 오인하게 하고, 가전제품 할부 만기가 아닌 더 장기간인 상조 상품 만기까지 할부금을 완납해야 하는 조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해당 업체들에 시정명령과 함께 각 사 홈페이지에 제재 사실을 게재하도록 하는 공표명령도 내렸다.
하지만 이번 제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상조업계는 지난 9년간 가입자가 120% 증가해 892만 명에 이르고, 선수금 규모도 9조 4500억 원으로 168%나 성장하는 등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러한 양적 성장 뒤에는 가전제품 사은품 관련 민원 뿐 아니라 복잡한 해약 조건, 불투명한 선수금 관리 등 다양한 소비자 피해 사례들이 얽혀 있다.
한국소비자원과 소비자24에 접수되는 상조 관련 민원들을 살펴봐도 가전제품 사은품과 관련된 피해가 적지 않다. 상조상품 가입 시 사은품으로 김치냉장고를 받는다고 해 가입했는데, 막상 해지할 때 냉장고의 잔여 할부금이 청구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이번에 제재받은 4개 업체뿐만 아니라 상조업계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점이다.
이보다 더 큰 상조업계의 문제는 복잡한 약관과 불투명한 해약 조건이다. 소비자들은 가입 시점에서는 각종 혜택에만 관심을 두다가, 실제 해약을 시도할 때 예상치 못한 위약금이나 해약환급금 삭감을 실감한다. 특히 상조와 가전제품 등 각종 특혜가 결합된 상품의 경우, 두 계약이 서로 연동되어 있어 한쪽을 해지하려면 다른 쪽에도 영향을 받는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다.
선수금 보전제도도 소비자들에게는 또 다른 불안 요소다. 할부거래법에 따르면 상조업체는 소비자로부터 미리 받은 상조대금의 50%를 공제계약 체결 등을 통해 보전 조치하도록 되어 있다. 상조회사의 폐업이나 등록취소 시 공제조합 등에 보전조치된 50%의 금액을 피해보상금으로 소비자들에게 지급하는 제도다. 하지만 나머지 50%에 대해서는 보장이 없어, 상조업체가 경영난에 빠질 경우 소비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한 구조적인 문제도 안고 있다.
실제로 상조회사에 미리 낸 선수금이 누락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장기간에 걸쳐 상조업체에 선수금을 납입하지만, 업체의 관리 소홀이나 시스템 오류로 인해 납입 내역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상조 서비스를 이용하려 할 때 납입 내역을 증명하기 어려워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상조업체들의 영업 방식도 문제다. 대부분의 상조업체들이 강좌를 가장한 단체 모임이나, 방문판매, 전화 권유를 통해 고객을 확보하는데 이 과정에서 과장 광고나 허위 설명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고령자나 금융 지식이 부족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격적인 마케팅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금 가입하면 특별 할인' '한정 수량' 등의 표현으로 즉석에서 계약을 유도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또한 상조업계의 급속한 성장과 함께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차별화를 위한 다양한 결합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상조와 가전제품의 결합뿐만 아니라 여행, 의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와의 결합상품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품들은 더욱 복잡한 계약 구조를 가지고 있어 소비자들의 이해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결합상품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사은품'이나 '적금'이란 말에 현혹되지 말고 상조 계약 외 별개의 계약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계약대금, 납입기간, 계약 해제 시 돌려받는 해약환급금의 비율·지급 시기 등도 철저하게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복잡한 상조 계약의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상조업계 자체적으로 투명하고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무료'나 '증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그에 따른 조건들을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고지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상조 상품 가입 시 화려한 혜택에 집중하다가 해지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위약금이나 해약환급금 삭감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상조와 가전제품이 결합된 상품은 두 계약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지가 더욱 어렵다.
이제부터라도 상조에 가입하려는 시민들은 당장의 혜택에만 현혹되지 말고, 장기간의 계약 조건과 총 비용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특히 결합상품의 경우 각각의 계약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해지 시 어떤 조건들이 적용되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정부는 상조 시장이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 상조업체들이 단기적인 이익 추구에서 벗어나 소비자 신뢰를 구축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투명한 계약 조건, 공정한 해약 규정, 그리고 소비자가 이해하기 쉬운 상품 구조 등이 뒷받침되어야 상조업계가 진정한 소비자 만족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공정위의 제재가 상조업계 전체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소비자 중심의 투명한 시장 질서가 확립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