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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칼럼] 스마트폰은 당신을 도청한다
칼럼

[이승재 칼럼] 스마트폰은 당신을 도청한다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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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기능 비활성화해야

23일 오전 8시쯤 필자와 A는 책에 나온 문장을 그대로 따라 적는, 필사(筆寫)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좋은 시를 필사하고 싶은 나에게 A는 "요즘에는 필사에 도움이 되는 제품이 많이 나온다.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책을 누르는 건데, 어디서 본 것 같다"고 말해줬다. 필자는 "독서할 때 책을 누르는 물건이 있는데 그게 뭔지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두 사람 모두 그 단어를 떠올리다 포기하고, 이내 다른 화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23일 오후 필자 구글 이메일로 온 쿠팡 광고.
23일 오후 필자 구글 이메일로 온 쿠팡 광고.

그런데 몇 시간 뒤 충격적인 이메일이 도착했다. '문진'(文鎭·명사 책장이나 종이쪽이 바람에 날리지 않게 눌러두는 물건)을 광고하는 쿠팡의 광고 메일이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폰 사용자인 필자의 스마트폰 운영체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다. 즉 안드로이드폰이 내가 나눈 대화를 다 듣고→이를 구글 애드(구글의 광고 플랫폼)가 "이 사람이 원하는 제품이 이거다"라는 내용을 확인하고→구글이 이를 쿠팡에 전달하고→쿠팡은 그 제품이 담긴 광고 이메일을 나에게 보낸 것이다.

 

나는 '문진'이라는 단어는 검색도 안 했고, 웹사이트에 들어간 적도 없었다. 그저 말했을 뿐이다.

마치 스마트폰이 그 대화를 엿들은 듯하다. 아니, 엿들은 게 맞다. 당신의 스마트폰은 '도청'이라는 단어를 피해갈 뿐, 사실상 모든 것을 듣고 있다. 

 

안드로이드폰이든 아이폰이든 예외는 없다. 음성 인식 명령을 대기하는 '헤이 시리', '오케이 구글'이 상시 대기 상태라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즉, 사용자가 말을 걸기 전부터 스마트폰은 마이크를 통해 당신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수신하고 있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건 이 기능이 '당신의 동의 하에' 작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앱 설치 시 묻는 마이크 접근 권한을 무심코 허용했을 뿐인데, 그 순간부터 당신의 일상은 광고 회사와 플랫폼 기업의 데이터 수집망에 자동으로 편입된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누구와 얼마나 자주 통화하는지, 어디서 어떤 단어를 말하는지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

 

그런데 구글과 애플은 늘 똑같은 답을 반복한다. "우리는 사용자의 대화를 녹음하지 않습니다. 광고 목적으로 목소리를 분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용자들이 "검색하지도 않았는데 광고가 떴다"고 '증언'한다.

 

구글과 애플은 우리 대화를 녹음하지는 않을지언정 다 듣고 있다. 스마트폰은 대화를 녹음하지 않아도, 단어를 '감지'하고 '연결'하고 '예측'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AI 광고 시스템의 본질이다.

 

자, 지금부터 이런 사실상의 '도청'을 막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실제로 필자가 이렇게 했다.

 

안드로이드폰의 경우 기기 설정 → 앱 → 권한 → 마이크로 들어가 마이크를 꺼야 한다.

기기 설정에서 '마이크'를 검색한 뒤 마이크 기능을 끈 상황 캡처.
기기 설정에서 '마이크'를 검색한 뒤 마이크 기능을 끈 상황 캡처.

아이폰이라고 다르지 않다. 설정에 들어가 'Siri 및 받아쓰기' 기능을 꺼야 하고, 앱별 마이크 권한도 일일이 비활성화해야 한다.

 

문제는 단순히 개인 정보 보호 차원이 아니다. 이건 '감시'다. 말 한마디가 감시되고, 그 말이 광고로, 소비로, 행동으로 연결되는 이 구조 속에서 인간의 사적 공간은 완전히 사라진다. 나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고 사야 할지를 기계가 먼저 예측하는 사회.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당신의 핸드폰은 전화기이자 거대 IT 기업 들으라고 쓰이는 마이크다. 그 마이크는 당신의 사생활을 끝없이 수집하고 있다. 

 

말하지 않았으면 광고가 뜨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한 우연이 반복될 수 없다. 모두가 '설마' 하고 있을 때, 기업은 그 '설마'를 수익으로 바꾸고 있다.

 

지금 당장 핸드폰 설정에 들어가라. 마이크 권한을 하나하나 꺼라. '오케이 구글'과 '헤이 시리'를 꺼라. 당신의 일상은 당신의 것이어야 한다. 기술은 도구이지, 감시자가 아니다. 

 

지금도 당신의 주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귀가 켜져 있다. 그 귀를 닫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 당신이 먼저 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계속해서 다 듣고 있을 것이다.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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