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목숨 갈아 넣은 빵…"못참겠다" SPC

지난 5월 최대 식품 기업 SPC그룹 계열사에서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자 사망 사고가 ‘또’ 발생했다.
지난 5월 19일 오전 3시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위치한 SPC삼립 시화공장. 50대 여성 노동자 A씨가 30년 된 냉각 스파이럴 컨베이어 벨트에 윤활유를 뿌리던 중 상반신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현장에서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세 번의 죽음, 수백 번의 사고
이 사고는 SPC 계열사에서 3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발생한 세 번째 사망 사고다. 2022년 10월 경기도 평택 SPL 제빵공장, 2023년 8월 경기도 성남 샤니 제빵공장에 이어 또다시 ‘기계에 끼임’ 사고가 난 거다.
SPC 계열사의 산재 사망 첫 사고는 2022년 10월 15일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소스 교반기에 끼여 숨진 사건이다. 당시 피해자는 소스 배합기 내부 이물질 제거 작업 중 앞치마가 기계에 말려들어가 상반신이 끼여 사망했다. 현장에는 2인 1조 근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뚜껑이 열려도 자동 정지되는 안전장치조차 없었다. 이 사고 직후에도 해당 기계는 천으로만 가린 채 밤새 가동됐으며, 사고 일주일 전에도 기간제 직원이 손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으나 회사는 병원에 직접 가라고 안내하는 데 그쳤다.
2022년 10월 17일 허영인 SPC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와 함께 3년간 1,000억 원의 안전관리 투자, 안전경영위원회 신설, 국제표준 안전인증 도입 등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이 회사에 따르면 SPC는 2022년 4분기부터 2024년까지 835억 원(목표의 84%)을 집행했고, 2024년 2월 기준 520억 원이 안전설비 확충, 장비 안전성 강화, 고강도·위험작업 자동화, 작업환경 개선 등에 투입했다.
그러나 이런 대대적인 안전대책에도 불구하고 2023년 7월에는 성남 샤니 제빵공장에서 근로자의 손가락이 기계에 끼여 골절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한 달 뒤인 8월 11일에는 같은 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반죽기계에 끼여 숨졌다. 2023년 11월 평택 SPL 제빵공장 물류창고에서는 20대 근로자가 머리 위로 떨어진 철제 컨베이어에 부상을 입었고, 2024년 1월에는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근로자의 손가락이 기계에 끼여 절단되는 사고가 또다시 일어났다.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5년 6개월 동안 근로복지공단에 의해 산업재해자로 인정된 SPC 직원은 853명, 월평균 13명꼴로 산재를 당했다. 이 중 86%가 사고성 재해로, SPC 계열사 현장에서 반복되는 안전사고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공허한 사과와 대책, 정부의 '솜방망이'
2022년 10월 17일 고용노동부는 평택 SPL 제빵공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수사에 착수했으나, 2023년 8월 샤니, 2025년 5월 삼립 등에서 닮은꼴 사고가 이어졌다.
2025년 5월 19일 시화공장 사고의 경우, 경찰은 “공장이 풀가동할 때 컨베이어 벨트가 삐걱대 윤활 작업을 위해 몸을 깊숙이 넣어야 했다”는 동료 진술을 확보했다. 사고가 난 컨베이어 벨트는 30년 된 노후 설비로, 산업안전보건법상 특별관리 대상임에도 사람 감지 자동정지, 경고음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없었다. 윤활유 주입 중 기계 작동 중단 절차조차 마련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SPC는 2022년 10월 21일 허영인 회장의 대국민 사과 이후에도, 올해 5월 19일 사고 직후 김범수 SPC삼립 대표이사 명의로 “관계 당국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과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과문 내용은 별다르지 않았다.
◆'불매운동' 소비자들 "참지 않겠다"
이러한 반복적 참사는 결국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2022년 평택 SPL 사고 이후 전국적으로 SPC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된 데 이어, 이번 시화공장 사망 사고 이후 불매운동은 더욱 조직적이고 강경한 양상으로 재점화됐다.
사고 발생 이튿날인 5월 20일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SPC 제품 그만 사먹자”, “피 묻은 빵 먹지 않겠다”는 글이 빠르게 확산됐다. 뒤이어 SPC 계열 브랜드가 나열된 ‘불매 리스트’가 등장해 많은 이들이 공유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샌드위치 소스 만들다 기계에 끼여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피 묻은 작업장에서 그대로 일을 시킨 살인기업 SPC, 사지도, 가지도 맙시다”라는 웹자보를 다시 배포했다.
특히 올 3월 SPC삼립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협업해 출시한 ‘크보빵(KBO빵)’은 4월 말까지 누적 판매량 1,000만 봉을 돌파한 인기 상품이었으나, 5월 19일 사고 이후 불매운동의 상징적 대상으로 떠올랐다.
5월 20일 ‘크보빵에 반대하는 크보팬 일동’은 “화려한 콜라보 뒤에 감춰진 비극, 크보팬은 외면하지 않겠다”는 슬로건으로 불매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5월 26일 오후 1시 기준 2,219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야구팬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선수들의 얼굴이 산재 기업의 이미지 세탁에 쓰이는 것을 반대한다”, “KBO는 천만 관중 시대 한 명의 야구팬일지도 모르는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불매운동은 단순 소비자 운동을 넘어 사회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2022년 불매운동 당시 SPC 가맹점주들은 매출이 10~20% 감소하는 등 직접적 피해를 호소했으며, 2025년에도 매출 감소와 폐업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민들은 “노동자의 피로 얼룩진 SPC 계열사 제품 먹고 싶지 않다”, “소비자가 합심해 불매해야 대기업이 바뀐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역시 불매운동에 동참하거나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 2025년 6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당 후보들이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재 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으면서, SPC 불매운동은 대선 쟁점으로까지 비화했다. 시민단체는 허영인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며 “반복된 인명사고에도 이를 무시하고 SPC와 협업을 강행한 KBO를 규탄한다. 우리의 목소리를 KBO에 전달하고자 트럭시위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2018년~2023년 6월까지 853명의 SPC 직원이 산업재해로 공식 인정받았고,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사망 3건 등 총 7건의 중대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SPC의 ‘말뿐인 사과’와 ‘공허한 약속’이 현장에서는 아무런 실효성을 갖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SPC그룹의 산재 사고는 더 이상 통계상의 숫자가 아니다. SPC 노동자들의 목숨이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구조적 무관심 속에 희생되고 있다는 증거다.
진정한 변화는 경영진의 실질적 책임 인식, 안전관리 체계의 전면 재설계, 현장 노동자와의 실질적 소통과 참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SPC는 앞으로도 ‘죽음의 식품 기업’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소비자들은 “SPC의 피 묻은 빵은 먹지 않겠다”는 결연한 행동으로 기업에 대한 '저항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SPC는 무엇하고 있는가. 특히 국내 최대 식품업체 SPC를 믿고 가게를 차린 무수히 많은 자영업자들을 위해서 SPC는 그 어떤 대책, 보상을 말하고 있지 않다.
기업의 생존과 노동자들의 생명, 안전 그리고 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위해 SPC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과와 대책을 내놓고 이를 진정으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