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Icon
한국어(KO)
미국(EN)
일본(JP)
중국(CN)
독일(DE)
인도(IN)
프랑스(FR)
베트남(VN)
러시아(RU)
banner
logo
logo
[이승재 칼럼] ‘평생 꽃길’ 한덕수의 마지막 기회
칼럼

[이승재 칼럼] ‘평생 꽃길’ 한덕수의 마지막 기회

이승재 기자
입력
수정2024.12.20 12:09
55년 공직, 꽃길 걸어온 한덕수 국무총리
윤석열 내란, 인정하고 진실 말하라
한덕수 국무총리가 8일 여의도 국민의힘당사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함께 국정 수습 방안을 담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국무총리실 홈페이지
한덕수 국무총리가 8일 여의도 국민의힘당사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함께 국정 수습 방안을 담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국무총리실 홈페이지

경기고-서울대 졸업, 행정고시 패스, 국비 유학-미국 하버드대 석·박사, 장관 또 장관, 경제부총리, 두 번의 국무총리.

 

'꽃길·외길의 불사신' 한덕수 국무총리 얘기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윤석열, 지난 55년 현대사 9명의 대통령 시기 ‘꽃길 공직’만 걸어온 그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엔 '로펌 돈방석'에 앉았다.

 

◆ 탄탄대로, 승승장구 ‘꽃길’ 온리

‘네이버 인물’과 각종 AI 검색으로 확인된 그의 화려한 이력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단 한 번도 실패와 나락, 부침을 경험해 본 적 없는 ‘55년 꽃길’이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이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한때 잘 나가다 골로 갔다, 다시 오르락 내리락하는 게 모든 이들의 인생이다.

 

‘꽃길’의 핵심만 꼽아도 숨차다. 

 

1949년 6월 18일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시절 서울로 전학, 서울 한복판 재동초등학교를 나와 경기중,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약관 21세, 서울대 재학 중인 1970년 6월 제8회 행정고시에 최연소 합격해 5급 공무원이 될 자격을 얻는다.

 

이후 군 입대, 육군본부에서 근무하고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 본격적인 공직에 발 담그기 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1977년부터 1979년까지 3년간 미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딴다. 이미 행시에 합격한 그는 국비 유학생이었을 터.

 

미국에서 돌아온 1979년 박정희 치하, 그는 경제 총괄 부처인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 경협총괄과 사무관으로 일한다.

 

전두환의 시대, 1980년대 초반 그는 다시 미국으로 날아가 1984년 ‘하버드대 박사’가 된다. 이 역시 나랏돈, 세금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을 것이다. 

 

이후 승승장구라는 표현도 모자랄 정도의 기세.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상공부 중소기업국 국장이 됐고, 김영삼 대통령 문민정부 시기인 1993년 대통령비서실 통상산업비서관, 상공자원부 기획관리실 실장에 이어 차관에 해당하는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까지 오른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정부 조직 개편으로 탄생한 ‘장관급’ 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본부장에 임명된다. 이어 2000년 주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한민국대표부 대사에 이어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에 오른다.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민간인 신분도 잠시, 한덕수는 2003년 국책연구소인 ‘산업연구원’ 원장을 지내다 1년 만인 2004년 국무총리국무조정실 실장으로 복귀한다. 

 

노 대통령은 그를 2005년 제8대 재정경제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에 지명한다. 1979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에서 26년 만에 대한민국 경제 사령탑에 올랐다.

 

그는 불과 2년 뒤 2007년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불리는 국무총리에 취임한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 대한민국 35대 국무총리였다.

 

많은 이들은 ‘한덕수는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부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2월 그를 '대사의 끝판왕'인 주미국대한민국대사관 대사로 임명했고, 만 3년을 지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그는 퇴직 고위직이 가는 ‘꽃보직’ 중 하나인 한국무역협회 회장에 취임해 3년을 채운다.

 

한덕수 총리와 특별한 인연이 없던 박근혜 대통령은 한 총리를 중용하지는 않았지만 비영리 재단법인인 대한민국 기후변화센터(KCCC) 이사장에 한덕수 ‘옹’이 취임하는 걸 막지 않았다. 그는 2017년까지 2년 임기를 채웠다. 특히 '블랙리스트'가 엄존하던 시절, 그는 정부 부처, 각종 위원회 등의 행사에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2016년 촛불혁명으로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2017년 5월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만이 유일하게 한덕수를 외면한 대통령이다.

 

◆ 문재인 대통령의 외면

이전 수십 년간 그의 꽃길을 지켜보고 몇년을 함께한 문 전 대통령이 한덕수를 부르지 않은 이유는 회고록 <문재인의 운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 당시 한덕수 총리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개방을 참여정부 임기 안에 확대하겠다"며 강하게 추진했다.

 

회고록에 "청와대 내 정무 참모들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덕수 총리는 계속해서 쇠고기 수입 개방 확대를 요구했다"고 썼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명확한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재검토하자며 한 총리가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책실장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를 사적인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고위경제 관료의 대표적 인물로 본듯하다.

 

나아가 한덕수 총리는 노무현 정부 마지막 총리를 지냈음에도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그는 주미대사로 재임 중이라는 이유로 7일간 진행된 국민장 기간 동안 고인을 애도하거나 추모하는 그 어떤 언행도 없었다. 워싱턴DC에 교민들이 마련한 빈소에도 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이후 그가 다시 공직에 복귀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 공직 말고 로펌, 다시 ‘꽃길+머니’

1970년 행시 패스 이후 공직, 정부 산하기관 등 관가를 떠나지 않았던 그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쓰임받지 못하자 손을 내민 곳은 국내 최고, 최대 로펌인 ‘김앤장’이었다.

 

2017년 12월부터 2022년 4월까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활동했다. 김앤장은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로펌으로, 주요 공직자 출신 인사들을 고문으로 영입해 법률 및 정책 자문을 해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외적, 공식적으로는 자문이지만 '전관예우'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는 업무다.

 

김앤장은 한 총리가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를 비롯해 주미 대사 및 재정경제부 장관, 경제부총리 등 고위직을 역임하며 구축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기업 및 기관과의 소통을 지원하고 김앤장의 글로벌 활동 영역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고 밝힌다.

 

한덕수 총리는 김앤장에서 재직하는 동안 연평균 약 5억 1천878만 원의 보수를 받았으며, 재직 기간 동안 총 보수는 약 25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일각에서는 18억 원 이상이라고 했는데, 그가 김앤장에서 일했던 기간(약 4.3년)을 정확히 계산하면 25억 9천390만 원이다.

 

공식적으로 받은 금액만 이렇다. 여기에 붙는 각종 비공식 보너스, 이런 저런 돈까지 합치면 총 합계는 이를 훌쩍 뛰어 넘을 게 분명하다. 

 

공직 꽃길에 이어 거액의 연봉과 최고의 의전 서비스까지 받는 '민간 최고의 꽃길'로 갈아탄 셈이다.

 

◆ 꺼진 불도 다시 보자

관가와 정치권은 물론 재계에도 회자되는 말 중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무서운 말이 있다. 선거에서 떨어졌어도 고위 공직, 기업 회장 등에서 물러났어도 언제 다시 활활 불타오를지 모르니 두루두루 사람을 관리해두라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2022년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은 그를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1949년생 국무총리, 1960년생인 윤석열 대통령보다 11살이 더 많은 그가 지명된 가장 큰 이유는 한 단어 ‘경륜’으로 설명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그를 총리로 지명하며 "한 후보자는 민관을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각을 총괄하고 조정하면서 국정을 수행해 나갈 적임자"라며 "한 후보자는 정파에 무관하고 오로지 실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국정 핵심 보직을 두루 역임한 분"이라고 지명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그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부터 내내 국무총리로서 하려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보였다.

 

그나마 그의 ‘글로벌 경륜’으로 도전했던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는 참패로 끝났다. 김건희 스캔들, 대통령실 이전, 이태원 참사, 새만금 잼버리 사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 윤석열 정권의 각종 실정과 오판에 대해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경륜’에서 나올 만한 관리 능력은 고사히고 직언, 충언, 조언 없이 '쉴드치기'에 바빴다.

 

급기야 2023년 9월 21일 국회는 한덕수 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가결했다. 재적 의원 295명 중 찬성 175표, 반대 116표, 기권 4표였다. 헌정 사상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윤 대통령은 거부했고, 이후 아무도 국무총리로 오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후임자 지명도 없었다. 

 

자리보전, 한덕수 총리는 이후 룰루랄라, ‘즐기는 국무총리’과 다름 없었다.

 

◆ 12·3 내란…생애 첫 가시밭길

그러나 그 행복은, 아니 55년 외길 꽃길 인생은 지난 3일 밤 느닷없는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이제는 ‘가시밭길’로 돌연 바뀌었다.

 

‘12·3 내란’을 수사하는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10일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피의자 소환을 통보했다. 수사단은 비상계엄 선포 전후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한 총리 등 국무위원과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등 11명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이미 ‘현직 대통령 출국 금지’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져다. 한 총리에 대한 출국 금지 가능성도 충분하다.

 

수사단은 한 총리 등 국무위원이 사전에 내란 모의에 참여했을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계엄법상 국방장관이나 행안장관이 ‘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윤 대통령에게 계엄을 건의한 당사자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다.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는 그가 윤 대통령과 내란을 공모한 ‘주요 업무 종사자’로 적시됐다.

 

법과 절차상으로는 한 총리가 계엄 선포안에 대해 사전에 관여했다고 보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결국엔 한 총리가 김용현 전 장관에게 언제 계엄 건의를 처음 들었고, 이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마지막 기회…"석고대죄, 진실을 말하라"

2022년 11월 1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하여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 브리핑에서 공분을 샀다. 당시 동시통역 장비의 기술적 문제로 인해 통역이 원활하지 않자, 한 총리는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태원 참사의 책임 관련한 농담, 국가 애도 기간 중 나온 참담한 언사였다.

 

한덕수 총리에게 묻는다. 그대는 이번 계엄 사태의 책임자 중 몇 번째인가.

 

이제 한덕수 총리는 55년 꽃길 인생의 마지막을 스스로 마무리하기 힘들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재임 기간 벌어진 각종 불법 행위의 공범이자 부역자인 그가 대통령의 반헌법 내란범죄에서도 같은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나마 현대사에 한덕수라는 이름이 불명예스럽게 기록되는 걸 막을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잘못을 소상히 밝히고 국민들에게 석고대죄하는 것, 그뿐이다.

 

‘평생 꽃길’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이제 마지막 기회의 순간이 왔다.

 

무릎 꿇고 죄를 빌고, 자리에서 물러나 진실을 말하라.

 

대한민국 관료 역사에 '전무'했던 한덕수 총리같은 이가 '후무'하기 바란다.

이승재 기자
댓글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주세요
추천순
최신순
답글순
표시할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