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풀린 전세금, 보증 책임 없다” 대법 첫 판단
![[사진=픽사베이]](https://lawandmoney.cdn.presscon.ai/prod/44/images/resize/800/20250623/1750633033392_166757574.webp)
전세 보증금을 실제보다 부풀려 전세자금 대출을 받은 경우, 대출에 보증을 선 기관이 그 보증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전세금 자체가 거짓으로 계약서에 기재된 경우, 이는 계약의 ‘중요 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증 기관의 책임이 면제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 5월 29일 신한은행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상대로 제기한 보증금 채무 소송(2023다244871)에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판결은 사실상 "허위 계약에는 보증 없다"는 대법원의 첫 공식 판단이다.
사건의 발단은 2017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임차인은 전세보증금 2억6400만 원으로 주택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달 신한은행으로부터 2억1000만 원의 전세자금 대출을 받았다.
이 대출에 대해 HUG는 보증(대출 상환이 안 될 경우 대신 갚아주는 제도)을 서줬다.
그러나 실제로 이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지급한 전세보증금은 2억3000만 원에 불과했다. 즉, 계약서에 명시된 보증금보다 3400만 원이 부풀려진 셈이다. 이후 2019년 11월 대출 만기가 도래했으나 상환되지 않았고, 신한은행은 HUG에 보증금 지급을 요구했다.
1심은 “대출자가 돈을 갚지 않았으므로 보증 기관인 HUG가 보증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신한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비록 보증금이 일부 부풀려졌더라도, 실제 지급된 2억3000만 원에 대한 전세 계약은 유효하다”고 봤다. 2심도 이 판단을 유지했지만, 일부 금액에 대해 HUG가 책임을 유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전세금 자체가 허위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대법원은 “보증부 대출의 핵심 근거인 전세 계약 내용이 허위라면, 이는 계약 체결 여부나 보증 범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보증금을 일부러 높여서 계약한 것 자체가 보증기관을 기망(속이는 행위)한 것이므로 처음부터 보증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재판부는 “원심은 전세 계약이 최소한 2억3000만 원 범위에서는 유효하다고 봤지만, 계약서 전체 내용 중 핵심인 보증금 액수가 허위이므로 이는 ‘허위 전세계약’에 해당한다”며 원심의 해석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또 “보증 면책 사유에 대한 해석에서 약관 법리를 오해했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전세사기, 보증금 부풀리기 같은 불법적 관행에 대한 사법부의 첫 강경 대응으로 평가된다.
특히 신용보증기관 입장에서 대출자의 ‘허위 전세계약’ 여부를 보다 엄격하게 검토해야 할 책임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주택금융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세 계약은 단순히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거래가 아니다. 이를 토대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보증 대출이 이루어지며, 공적 보증기관이 세금으로 위험을 떠안는 구조다. 계약서에 적힌 숫자 하나가 허위일 경우, 이 책임을 국가가 대신 지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핵심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