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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칼럼] 중대재해처벌법 3년…"생명이 먼저"
칼럼

[이승재 칼럼] 중대재해처벌법 3년…"생명이 먼저"

이승재 기자
입력
수정2025.03.03 02:27

"사람 생명이 최우선"이라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3년을 지났다. 

 

이 법은 지난 3년 노사 간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여전히 실효성과 법적 정당성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중대한 산업재해와 시민재해에 대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직접적인 형사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은 2021년 1월 26일에 제정되어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획기적인 전환점이라는 평가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이 엇갈리고 있다.

 

◆실질적인 최고 경영자에 안전 책임 

중대재해처벌법은 단순한 산업안전법이 아니다. 이는 기업 운영 방식과 안전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법이며, 경영책임자에게 강한 책임을 묻는 법이다. 태안화력발전소 고(故)김용균 씨의 사망사고와 물류창고 건설현장 화재 등 연이은 산업재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이 법을 탄생시켰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만으로는 노동자의 안전을 충분히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거론되며, 이태원 참사와 무안공항 참사 등에서 법 적용 여부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이 법은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재해까지 포괄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법률로 자리 잡았다. 법 시행 이후 기업들의 안전관리 시스템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최고경영자들이 안전 문제에 직접 관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노동자 사망사고는 감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산업현장의 안전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사고 사망자는 2021년 683명, 2022년 644명, 2023년 598명으로 점진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는 법 시행과 함께 사망사고가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체 산업재해자 수는 2021년 12만 2713명, 2022년 13만 348명, 2023년 13만 6796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법 시행 이후에도 산업재해 자체가 줄어들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단순히 통계만으로 법의 효과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사망사고 감소에는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피해자들 "수사와 재판 더뎌" 

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의 법 적용 현황을 살펴보면, 고용노동부는 현재까지 866건을 수사했고, 그중 160건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은 76건을 기소했으며, 그중 36건이 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졌다.

 

 법적 절차가 진행된 사례들을 살펴보면, 2023년의 첫 유죄 판결이었던 태안화력발전소 사망사고에서는 한국서부발전 전 사장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고, 안전관리 책임자에게는 금고 10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건설현장 사고와 관련해서는 여러 추락사고에 대해 건설사 대표 및 현장소장들에게 대체로 징역 6개월에서 1년, 집행유예 및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제조업 현장에서 발생한 산업용 기계 끼임 사고 등에 대해서는 사업주에게 징역 8개월에서 1년, 집행유예 2년 및 벌금이 선고된 사례들이 있다. 

 

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수사와 재판이 너무 더디다는 지적이 많으며, 사고 발생부터 최종 판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면서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기대에 못미치는 이유

전문가들은 중대재해 감소 폭이 크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다양한 문제를 지적한다. 경영책임자가 안전 시스템을 정비하더라도 근로자의 실수로 인한 사고를 완전히 막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된다.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해도 인적 오류를 100%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현장의 고령화 및 외국인 노동자 증가로 안전 문제 해결이 더욱 복잡해졌다.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안전 교육의 효과가 떨어지고, 고령 노동자의 경우 신체적 한계로 인해 사고 위험이 더 높아질 수 있다.

 

◆노사간 엇갈리는 3년 평가

경영계를 중심으로 법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도 여전히 강하다. 경영계는 법 위반에 대한 범죄 성립 요건이 불명확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안전보건 확보 의무'의 구체적 내용이 모호하여 기업들이 어디까지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하청 노동자 사망 사고에서도 원청이 과도하게 처벌받는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된다. 원청이 직접 관리·감독하지 않는 영역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지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법 해석이 일관되지 않아 형벌 법규의 엄격한 해석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으며,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법원마다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 법적 안정성이 저하된다는 의견도 있다.

 

중소기업과 영세업체는 인력과 재정이 부족해 법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대기업과 달리 영세 사업장은 안전관리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고, 설비 투자에도 한계가 있다. 

 

반면 노동계는 경영진의 안전의식이 변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안전 문제가 현장 관리자의 책임으로만 여겨졌지만, 이제는 최고 경영진이 산업안전을 더욱 중요한 경영 목표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는 기업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또한 안전보건 관리 시스템이 정비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성과로 평가된다. 많은 기업들이 안전 관련 예산을 증액하고, 전문인력을 채용하며, 체계적인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업그레이드 필요한 시점

현재 법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대안이 필요하다. 경영책임자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현재는 '경영책임자'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어, 실질적으로 안전관리에 관여하지 않는 임원들까지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에 따라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하청-원청 관계에서 지배·관리 기준을 세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으며, 원청이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구분하여 공정하게 책임을 부과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중소기업과 영세업체가 안전설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적, 기술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안전 관리를 잘하는 기업에는 세제 혜택 및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으며, 처벌 위주의 접근보다는 선제적 안전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안전 인증을 받은 기업에 대한 보험료 할인,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 우리 사회는 분명 변화하고 있다. 이 법은 그동안 소홀했던 산업안전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격상시켰다. 기업들은 안전관리 시스템을 정비하고, 안전 투자를 확대하며, 경영진의 안전 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사망사고의 점진적 감소는 이러한 변화의 긍정적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업 운영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고 법적 기준이 모호하다는 문제도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중소기업과 영세 사업장의 경우 법 준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는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제는 이 법을 둘러싼 갈등을 넘어서 "사람 생명이 가장 먼저"라는 인식 아래, 현실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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