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2위 업계 특허전쟁…승자는?

국내 전선업계 양대 산맥인 LS전선과 대한전선이 특허침해를 두고 치열한 법정 다툼을 벌인 끝에 업계 1위 LS전선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LS그룹과 호반그룹의 자존심 싸움에서 호반측이 '대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허법원 제24부(부장판사 우성엽)는 최근 LS전선이 대한전선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손해배상 등의 청구 소송 2심 재판에서 LS전선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고, 대한전선의 청구는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국내 전선업계 1위 LS전선과 2위 대한전선 간의 기술패권 다툼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대한전선이 LS전선의 부스덕트용 조인트 키트 제품 특허를 침해한 것을 인정해, 관련 제품을 폐기하고 15억 1,628만 1,290원의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이는 1심에서 판결한 4억 9천만원보다 3배 이상 증액된 금액이다.
부스덕트는 건축물에 전기 에너지를 전달하는 배전 수단으로, 조인트 키트는 개별 부스덕트를 연결해 전류 흐름을 유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두 기업은 국내 전선 산업을 대표하는 회사로 각각 독자적인 행보를 걸어왔다. 국내 전선 시장의 선두주자인 LS전선의 2023년 매출액은 약 5조 3천억원에 달하며, 2위 대한전선은 약 1조 2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양사의 매출 규모 차이는 4배 이상으로, LS전선이 국내 전선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55년 설립된 대한전선은 오랜 역사를 지닌 기업으로 전력용 케이블, 통신용 케이블, 광케이블, 산업용 특수케이블 등을 제조하며 국내외 시장에서 활동해 왔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겪었으나, 현재도 전력 및 통신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케이블을 공급하고 있다. 국내 전선업계의 원조격인 이 회사는 2021년 호반건설을 주력사로 하는 호반그룹에 인수됐다.
반면 LS전선은 구 LG전선에서 출발하여 2005년 LS그룹 출범 이후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됐다. 초고압 케이블, 해저 케이블, 산업용 케이블, 통신 케이블, 자동차 전선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며, 아시아, 유럽, 미주 등 전 세계에 생산 기지와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초고압 케이블과 해저 케이블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국내외 주요 전력망 구축 프로젝트와 해상풍력발전 연계 해저케이블 공급 등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다.
이번 소송은 LS전선이 자사의 하청업체에서 조인트 키트 외주 제작을 맡았던 직원이 2011년 대한전선으로 이직한 후 대한전선이 유사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기술 유출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2심 재판부는 "조인트 키트와 부스덕트는 그 기능 발휘를 위해 사실상 세트를 이루는 하나의 제품과 같이 취급되고 판매자에 의해 시공되기 때문에 피고의 침해 이익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조인트 키트 외에 부스덕트의 판매 및 그 시공으로 얻은 이익도 특허법 제128조 제4항의 피고가 '침해행위로 얻은 이익액'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재판부는 이번 사건이 "특허 침해품 외에 부수품과 부수용역에 대해 손해배상을 인정한 국내 첫 판결"이라며 "회계 감정을 통해 각 비용 항목의 구체적 성격에 따라 고정비와 변동비를 구분해 손해액을 산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공인회계사 감정평가를 통해 대한전선의 특허침해 관련 매출액 한계이익(2012년 11월 30일~2022년 12월 31일)을 75억 8,140만 6,454원으로 산정하고, 이 가운데 대한전선 제품에 대한 2개 특허의 각 기여율을 10%로 판단해 최종 손해배상액을 결정했다.
이는 1심 판결에서 LS전선이 승리한 이후 더 압승을 거둔 결과로 평가된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이미 LS전선의 손을 들어주며, 당시 대한전선이 보유 중인 해당 제품 폐기와 함께 손해배상 청구 금액(41억원) 중 4억 9,623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LS전선은 배상액이 적다는 이유로, 대한전선은 특허를 침해한 적이 전혀 없다며 1심 결과에 불복해 쌍방 항소했고, 결국 2심에서 배상액이 3배 이상 증액되는 결과가 나왔다.
대한전선은 "특허는 관련 사이트(키프리스)를 통해 공중에 공개되는 것으로 협력업체 직원을 통해 해당 기술을 취득할 이유가 없다"며 LS전선의 의혹 제기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자사의 부스덕트용 조인트 키트가 너트의 파지 여부에 따른 볼트 체결 방법, 도체와 절연판 접촉 여부 등 LS전선 제품과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있고 미국, 일본 등의 선행발명을 참고했다고 주장했지만, 1·2심 재판부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LS전선은 이번 판결에 대해 "LS전선의 기술력과 권리를 인정한 중요한 결정"이라며 "앞으로도 임직원들이 수십 년간 노력과 헌신으로 개발한 핵심 기술을 지키기 위해 기술 탈취 및 침해 행위에 대해 단호하고 엄중하게 대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대한전선은 즉시 입장문을 내고 "특허법의 과제 해결 원리와 작용 효과의 동일성 등에 대한 판단 및 손해 배상액의 산정 등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며 "향후 판결문을 면밀하게 검토 후 상고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알렸다. 아울러 "관련 제품은 1심 판결 직후 이미 폐기했기 때문에 추가로 폐기할 것은 없다"며 "독자 기술로 설계를 변경한 조인트 키트를 수년 전부터 사용해 왔기 때문에 이번 판결의 선고 결과가 부스덕트 영업 및 사업에 주는 영향은 일절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특허 소송은 국내 대표 전선 기업 간의 기술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보여주는 사례로, 국내 제조업계에서 지식재산권 보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향후 대한전선이 상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어서 양사의 법정 다툼은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번 판결로 LS전선의 기술력과 특허권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국내 전선업계는 최근 신재생에너지와 스마트그리드 등 미래 에너지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LS전선은 해상풍력발전 관련 해저케이블과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에 주력하고 있으며, 대한전선도 독자적인 기술력 강화에 나서고 있어 양사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