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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칼럼] ‘무변’ 윤석열…2027 미래완료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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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칼럼] ‘무변’ 윤석열…2027 미래완료진행형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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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칼럼] ‘무변’ 윤석열…2027 미래완료진행형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어느 정도까지? 
 
총선 참패 이후 첫 기자회견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이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습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영수회담을 여는 등 “바꾸겠다”는 말을 많이 하고 그런 모습을 보였지만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은 ‘무변’(無變)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육하원칙’ 없는 바꾼다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라”는 국민의 명령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이해한다면 뭘,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언제 해야하는 지를 밝히는 자리였습니다.
 
취임 24개월을 맞은 자리, 그러나 무려 1년 9개월(21개월)만에 열린 기자회견이라는 점에서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을 텐데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국정 운영의 큰 변화에 대한 구체성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국정 운영 변화의 6하원칙, ‘무엇을-누구를-언제-어디를-어떻게-왜’가 없었습니다.
 
기자회견은 25분 동안의 국민보고와 73분간의 질의응답으로 진행되었지만 별 새로운 내용없이 여러 중요한 현안에 대한 동일한 입장을 반복하면서 유의미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먼저 일방적으로 낭독한 25분 국민보고에서 윤 대통령은 “송구스럽다”고 하면서도 지난 2년간 국정상황과 성과를 ‘자화자찬’하는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습니다.
 
질의응답에선 언론 질문부터 대통령 답변까지 핵심 쟁점에 이르지 못했고, 동문서답도 일부 있었습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임무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제각각 언론사의 가장 유능한 기자 중에서 선정됩니다. ‘유능하다’는 말은 기사를 잘 쓰거나 취재를 잘 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많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사주와의 관계, 편집 담당 간부와의 신뢰 등 사내 정치를 잘 하는 사람들이 선발됩니다.
 
청와대 출입기자의 최대 업무가 무엇일까요? 언론사 주최 행사에서 대통령을 초청하거나 축사를 받는 일입니다. 또 그만큼 중요한 기자 외 업무는 정부 광고를 수주하는 겁니다.
 
이래저래 대통령실의 ‘눈치’와 ‘심기’를 잘 살피는 능력도 필수적입니다.
 
물론 전부 그런 건 아니고 대다수 언론사가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 2주년 기자회견에서도 ‘예의’를 갖춰 ‘선을 넘지 않는 질문’이 대다수였습니다.
 
 
 
◆지킬 ‘일관성’이 무엇인가
 다시 기자회견 내용으로 돌아가면, 윤 대통령은 총선 패인과 관련해 "정부에 대한 그간 국정운영의 평가"라며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가 많이 부족했다"고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더 소통하는 정부, 경청하는 정부로 바뀌어야 한다”며 제3자적 태도로 일관하면서 “고칠 것은 고치고 일관성을 지킬 것은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소통 방식이 문제라 바꾸겠지만 정책 현안의 기조는 바꾸지 않겠다, 일관적으로 계속 가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지요.
 
무엇보다 ‘변화의 바로미터’로 유심히 지켜본 질의응답이 있었습니다.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방해 의혹 특검법안’과 '김건희 여사 특검'입니다.
 
윤 대통령은 기존의 입장과 논리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특검은 봐주기 의혹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며 끊임없이 제기된 봐주기 의혹을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문제엔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을 끼친 부분에 사과를 드린다"고 처음으로 ‘사과’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지난 2월 "박절하지 못했다"라는 발언에 비해 분명히 사과한 거지만 특검에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특검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의 경우는 더 단호했습니다. 지난 정부 검찰이 특수부까지 동원해 수사했다며, 기존 특검 불가를 재확인했지요.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게시된 가장 최근 김건희 여사 사진. 2023년 12월 네델란드 방문 당시 모습. [사진=대통령실]
 
 
다만, 채 상병 사건은 '경찰과 공수처의 수사결과가 미진할 경우'라는 전제로 조건부 특검 수용 입장을 밝혔지만, ‘미진’에 대한 판단은 윤 대통령 본인이 한다는 점에서 그저 말뿐인 ‘조건부 수용’이라고 봅니다.
 
◆경제와 민생 '체감'…포퓰리즘
경제 분야에 대한 질문 중 고물가에 대해 윤 대통령은 “모든 수단을 강구해 정부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대책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배추’는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부자 감세’ 논란의 핵심인 금융투자세 폐지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자신의 일관성을 드러냈습니다.
 
“1400만 개인투자자의 이해가 걸려 있는”이라는 표현을 쓰며 금융투자세 폐지를 거듭 주장했습니다.
 
금투세가 무엇입니까. 예금, 주식, 펀드 등 금융투자로 얻은 이익이 연간 5000만 원을 넘을 때 수익금의 22~27.5%를 세금으로 징수하는 금융종합소득세입니다.
 
없는 걸 만드는 게 아니라 있는 걸 폐지하겠다는 겁니다.
 
‘많은 소득이 있는 곳에 그에 걸맞는 세금을 부과한다’는 만고불변의 대원칙을 무너뜨리는 위험천만한 발상입니다. 
 
이게 이념적 포퓰리즘 아니면 무엇인가요. 
 
기초노령연금 40만원 인상은 여야가 합의했으니 포퓰리즘이 아니고 금투세 폐지만 포퓰리즘이란 주장은 납득하기 힘듭니다. 
 
 
모든 포퓰리즘이 다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는 겁니다.
 
야당이 협조를 안 해 금투세 폐지가 안 된다는 말말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야당과의 협치에 대한 질문에서는 ‘과잉 갈등’이란 진단을 내려, 협치를 위한 진정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벌써 두 달이 넘은 의과대학 정원 증원 문제 역시 구체성이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적 설득의 방식에 따라 풀어나갈 수 밖에 없다, 의료계 단체들이 통일된 입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대화의 걸림돌”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말은 결국 다른 뾰족한 수 없이 이대로 갈 것이라는 고집으로 해석됩니다.
 
연금 개혁과 공공기관 지방에 대한 2차 이전 등 중요한 현안에 대한 로드맵도 두루뭉술 넘어가는 답변에 그쳤습니다.
 
윤 대통령은 회견 내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소통과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협치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윤 대통령이 어떻게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정책적 변화를 실현할지가 관건입니다.
 
이번 기자회견은 국정에 대한 신뢰 회복과 진정한 소통을 위한 첫걸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변화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윤 대통령은 이를 실질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 문법 중에 우리 말에는 없는 ‘시제’가 있습니다.
 
미래 완료 진행형 시제인데, 이는 미래의 특정 시점까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을 일을 말합니다.
 
안타깝지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변화가 없다면 윤 대통령의 남은 3년은, 지난 2년을 다시 되풀이하는 불행스러운 2027년 ‘미래완료진행형’ 시제가 될 겁니다.
 
 
위에 내건 이미지와 같은 대한민국의 추락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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