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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칼럼] ‘전가의 보도’ 규제…알리와 테무
이승재 기자
입력
수정2024.11.1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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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칼럼] ‘전가의 보도’ 규제…알리와 테무
위 제목에 적은 전가의 보도란 집안 대대로 물려온 보물 같은 칼을 말합니다. 전가(傳家)란 대대로 집안에 전해진다는 뜻이고, 보도(寶刀)란 보검을 의미합니다. 요즘 흔히 잘 안 쓰는, 무협지에나 나올 말이죠.
고색창연한 이 단어는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비장의 무기나 결정적인 수단을 뜻합니다. “드디어 전가의 보도를 꺼내들었다”라는 문장은 가급적 아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해외 온라인 쇼핑 규제와 관련해 현 정부의 오락가락, 무능함을 보면서 대한민국 경제 관료는 여전히 ‘규제’를 ‘전가의 보도’로 대대손손 물려받은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규제라는 보검을 시장에 휘두르면 그 누구도 추풍낙엽처럼 제거할 수 있고, 이를 지켜보는 누구든 사시나무 떨 듯 그 칼을 두려워할 거라는 경제 관료들의 ‘이지 고잉’, 고.정.관.념.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거대 온라인 쇼핑사이트인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와 테무(Temu)는 글로벌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두 플랫폼은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제품군을 앞세워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국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도 중국의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비중은 하루가 다르게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알리익스프레스는 한국 내에서 월간 활성 사용자 수가 717만 명을 넘어서며, 쿠팡과 11번가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쇼핑 앱이 되었습니다. 테무 역시 2023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월간 활성 사용자 수가 580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소비자 보호와 국내 기업 보호를 이유로 해외 직구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도입했습니다. 관세청은 최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플랫폼을 통해 구매한 초저가 어린이 제품 38종에서 발암물질인 카드뮴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하고, 해외 직구 물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습니다. 그런데 발표 사흘 만에 꼬리를 내렸죠.
정부가 19일 해외 직접구입(직구) 금지 논란과 관련해 “국내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80개 품목의 해외 직구를 사전적으로 전면 금지·차단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 방안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지난 16일 ‘해외 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이 발표된 이후 소비자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입니다.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정현안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위해 우려가 큰 어린이용품과 전기·생활용품 등 80개 품목에 대해서는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인증이 없으면 해외 직구를 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 이정원 국무2차장은 3일 뒤인 19일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위해성이 없는 제품의 직구는 전혀 막을 이유가 없고 막을 수도 없다”며 “국민 안전을 위해 위해성 조사를 집중적으로 해서 알려드린다는 것이 정부의 확실한 입장”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민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정책 사안을 면밀한 검토 없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가 논란이 일자 허겁지겁 주워 담는 모습. 이런 오락가락 행보가 현 정부의 고질병이 된 건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만 5살 초등학교 입학, 주식 공매도 금지, 일회용품 사용 규제 유예 등에서 보였던 무능이 다시 드러났습니다.
물론 위해 제품으로부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정부의 책무임이 틀림없습니다. 정부가 안전성 강화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해외 직구 제품에 대한 위해성 검사를 확대하고 소비자 피해 구제 방안을 서둘러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 불편이나 규제의 실효성 등에 대한 고려 없이 ‘닥치고 금지’와 같은 설익은 대책을 내놓는 것은 무책임한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해외 직구 규제는 ‘오로지, 자유’를 외치는 윤석열 대통령의 신념과 정반대입니다. 소비자들이 더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합니다.
이런 기본권뿐 아니라 돈도 중요하지요. 소비자들이 해외에서 단돈 만 원에 구매할 수 있는 부품을 국내에서는 3만원에 사야한다면 소비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증가시키고 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국내 기업을 보호하려는 명분도 있을 텐데, 종국에는 이런 규제는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해외 직구를 통한 소비자의 요구를 억제하는 대신,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혁신과 개선을 장려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규제를 통해 경쟁을 억제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국내 기업을 보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혁신과 발전을 저해하게 됩니다.
경제 관료들이 손쉽게 생각하는 규제를 통한 시장 통제는 시장 왜곡을 불러오고 스스로 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시인하는 셈이기도 합니다.
한국 경제 관료들의 ‘전가의 보도’, 규제 만능주의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경제적 부담을 증가시키며, 시장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또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으며, 정책의 일관성 부족으로 인한 신뢰성 저하 문제도 발생합니다.
보다 효과적인 경제 정책은 소비자와 기업의 자유를 존중하고, 시장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혁신과 경쟁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 경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어 윤석열 대통령이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공습’을 미국의 도움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심히 걱정되기도 합니다. 영화 ‘어벤져스’에 나오는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는 미국을 보호하는 데에만 사용하니까요.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