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기] ③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야신+월드컵? 한 번 더!”

현재 세계 최고의 골키퍼에게 주는 상은 2가지다. 트로페 야신(Trophée Yachine)과 FIFA 월드컵 골든글러브(Golden Glove). 야신상은 매년, 골든글러브는 월드컵이 열리는 4년마다 선정된다.
이 두 상을 모두 받은 이른바 ‘골키퍼 더블’을 기록한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 축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기록을 가진 문지기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PL 아스톤 빌라 수문장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다.
◆유일무이, ‘골키퍼 더블’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는 축구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골키퍼상인 트로페 야신, 골든글러브를 모두 수상한 유일한 선수다. 트로페 야신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영예다. 트로페 야신은 프랑스 축구 전문 매체 '프랑스 풋볼'이 2019년부터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함께 수여하는 상이다. 이 상은 과거 소련의 전설적인 골키퍼 레프 야신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으며,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골키퍼에게 수여된다.(레프 야신은 발롱도르 70여년 역사상 유일하게 골키퍼로 수상한 선수로, 1963년 수상).
또 FIFA 월드컵 골든글러브은 월드컵 최고의 수문장에게 주는 상인데,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되었을 때에는 ‘레프 야신 어워드’으로 불리다가 2010년부터 공식적으로 '골든글러브'로 명칭이 변경됐다.
따라서 매년 선정하는 야신상과 4년마다 개최되는 월드컵 골든글러브 수상자는 각각 별도로 정해진다.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는 2022년 월드컵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골든글러브를 거머쥐었고, 이듬해인 2023년에는 월드컵에서의 성과와 소속팀 아스톤 빌라에서의 꾸준한 기량을 인정받아 트로페 야신을 수상했다. 이는'월드컵 최고의 골키퍼'이면서 동시에 '연간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인정받은 역사상 유일한 사례다. 그는 2024년에도 트로페 야신을 수상하며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 아르헨티나 소년
1992년 9월 2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마르델플라타에서 태어난 다미안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로메로(Damián Emiliano Martínez Romero) 집안은 가난했다. 아버지 알베르토는 어부였고, 어머니 수사나와 함께 가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마르델플라타의 항구 도시라는 배경과 아버지의 어부 직업은 마르티네스의 바다를 향한 애착과 고향에 대한 깊은 사랑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가족들은 그를 애칭으로 '마르티뇨'라고 불렀고, 훗날 축구장에서 팬들이 외치게 될 '디부'라는 별명은 어린 시절 만화 캐릭터에서 따온 것이었다. 지금도 축구 팬들은 ‘디부’라고 하면 다 누군지 안다.
마르델플라타의 작은 집에서 자란 마르티네스는 어려운 가정 형편을 일찍부터 체감했다. 아버지가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는 소년 마르티네스에게 평생의 동기가 되었다.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를 축구에 더욱 몰두하게 만들었다.
◆‘대체 투입’…골키퍼의 운명적 전환
공 좀 차는 남미의 가난한 집 아이들이 누구나 꿈꾸는 ‘프로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축구를 시작한 디부는 필드 플레이어였다. 그런데 13세 때 한 경기에서 골키퍼가 부상을 당하자 급작스럽게 골문을 지키게 되었다. 그 순간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큰 키(현재 키 195cm)와 뛰어난 반사신경, 그리고 천부적인 공중볼 처리 능력을 발견한 코치들은 그를 골키퍼로 전향시켰다. 마르티네스 본인도 골문 앞에서 느끼는 특별한 감각을 인지했고, 이후 골키퍼로서의 삶에 전념했다.
14세에 지역프로팀 인디펜디엔테에 입단한 마르티네스는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되었고, 그는 축구로 가족을 도와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인디펜디엔테에서의 훈련은 혹독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훈련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실력을 갈고 닦았다.
◆PL 명문 ‘아스날’…꿈과 현실 사이
17세 때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명문팀 아스날의 스카우트 눈에 띈 마르티네스는 2009년 영국으로 건너간다. 이는 가족 모두에게 희망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언어 장벽, 문화 차이, 그리고 무엇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처음 몇 년간은 주로 예비팀과 임대를 반복하며 실전 경험을 쌓아야 했다.
아스날에서의 초기 시절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베른트 레노(Bernd Leno)가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는 동안 마르티네스는 벤치를 지키기도 했고, 여러 하부 리그 팀들로 임대되며 경험을 쌓았다. 로더럼 유나이티드, 셰필드 웬즈데이, 울버햄튼, 게타페, 레딩 등을 거치며 총 6번의 임대를 경험했다.
그런데 그 임대 생활의 시련은 곧 그의 성장에 ‘신의 한 수’가 된다. 특히 스페인 게타페에서의 임대 시절은 그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라리가의 높은 수준을 경험하며 유럽 최고 수준의 공격수들과 맞서면서 실력이 급격히 향상되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시즌을 일찍 마감해야 했고, 이는 그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잉글랜드 레딩에서의 마지막 임대 기간 동안 마르티네스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을 했다. 2부 리그인 챔피언십에서의 혹독한 일정과 거친 경기 스타일에 적응하면서 정신적으로도 더욱 강해졌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골키핑 스타일을 완성하기 시작했다.
◆아스날에서의 마침내 얻은 기회
2019-20 시즌, 베른트 레노의 부상으로 마르티네스는 마침내 아스날 1군에서 기회를 얻었다. 10년을 기다린 순간이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시즌 후반부 23경기에 출전하여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고, 특히 FA컵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승전에서 첼시를 상대로 보여준 선방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빈 관중석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상대 공격수들을 향한 도발적인 몸짓과 큰 목소리로 동료들을 지휘하는 모습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레노가 복귀하면서 다시 경쟁 상황에 놓였고, 마르티네스는 결국 주전 자리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애스턴 빌라, 전성기 시작
2020년 9월, 마르티네스는 20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받고 애스턴 빌라로 이적했다. 이는 그의 커리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였다. 빌라 파크에서 그는 마침내 의심할 여지없는 주전 골키퍼가 되었다. 첫 시즌부터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프리미어리그 잔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딘 스미스 감독과 스티브 브루스 감독을 거치며 마르티네스는 팀의 절대적인 기둥이 되었다. 그의 세이브율과 분배 능력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특히 장거리 킥으로 직접 어시스트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빌라의 새로운 전술적 무기가 되었다.
애스턴 빌라에서 마르티네스는 단순한 골키퍼를 넘어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후배 선수들에게는 멘토 역할을 자처하며, 어려운 시기에는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구심점이 된다. 그의 리더십은 목소리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훈련에서의 모범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특히 빌라 파크에서의 홈경기에서 그가 보여주는 팬들과의 소통은 특별하다. 경기 전후로 팬들과 교감하며, 클럽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이적 후 짧은 시간 만에 빌라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아르헨티나 국대 늦깎이 데뷔
마르티네스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데뷔는 28세라는 늦은 나이에 이루어졌다. 2021년 6월, 리오넬 스칼로니 감독의 부름을 받고 처음으로 1번 유니폼을 입었다. 그의 국가대표팀 데뷔는 즉시 성공으로 이어졌다. 202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의 28년 만의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보여준 안정감 있는 골키핑은 메시와 동료들에게 큰 신뢰를 주었다. 대회 기간 내내 단 한 골도 잃지 않는 완벽한 수비를 보여주었다.
그의 첫 번째 월드컵인 2022 월드컵에서 그는 '축신' 리오넬 메시에게 남은 유일한 왕관인 월드컵 우승을 선사하며 ‘퍼펙트 메시’를 이뤄냈다. 대회 내내 보여준 그의 퍼포먼스는 전 세계 축구팬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특히 네덜란드와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보여준 심리전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상대 키커를 향한 도발적인 제스처와 골라인 위에서의 춤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프랑스와의 결승전은 마르티네스의 진가를 보여준 경기였다. 킬리안 음바페의 해트트릭에도 불구하고 굴복하지 않았고, 연장전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적인 선방을 보여주었다. 승부차기에서는 킹슬리 코망의 슈팅을 막아내며 아르헨티나의 36년 만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독특한 캐릭터와 심리전
마르티네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경기장에서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데 있다. 특히 승부차기에서 보여주는 그의 행동들은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만, 팀 동료들과 팬들에게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의 심리전은 단순한 도발을 넘어선다. 상대 공격수의 성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각각에게 맞는 다른 접근법을 사용한다. 몸짓, 시선, 타이밍 등 모든 것을 계산해서 상대방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이는 현대 축구에서 골키퍼의 역할이 단순히 골을 막는 것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성기 ING
현재 33세인 마르티네스는 골키퍼로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일반적으로 골키퍼는 30대 중후반까지 최고 수준을 유지할 수 있어, 그에게는 아직도 몇 년의 전성기가 남아 있다. 2026년 북중미(미국-캐나다-멕시코)월드컵에서도 아르헨티나의 골문을 지킬 것으로 예상되며, 연속 우승의 꿈, 골든글러브 2연패의 영광을 노릴 것이 분명하다.
클럽 차원에서도 애스턴 빌라와의 계약을 2027년까지 연장하며 장기간 머물 의사를 표명했다. 빌라의 유럽대회 복귀와 더 높은 목표 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의 경험과 리더십은 젊은 선수들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다.
◆피치 밖…가족, 선한 영향력
경기장에서의 격렬한 모습과는 달리 마르티네스는 가족에게는 극진한 사랑을 보인다. 2017년 결혼한 부인 아만다 기엘과의 사이에는 아비가일과 산티아고 두 자녀가 있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항상 가족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며, 자신의 성공이 가족의 희생 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족은 물론 선한 사회적 영향력도 그를 상징한다.
2022년 월드컵 우승 직후 그는 결승전에서 착용했던 골키퍼 장갑을 자선 경매에 내놓았다. 수익금 전액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소아암 병동에 기부되었다. 이는 그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아르헨티나에서 그는 단순한 축구선수가 아닌 국민적 영웅이다. 특히 젊은 골키퍼들에게는 롤모델이 되고 있으며, 그의 성공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고향 마르델플라타의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해 개인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가난한 환경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많은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의 전성기는 이제 한창이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를 수상한 유일한 골키퍼인 레프 야신의 뒤를 이어 그가 발롱도르를 받으며 야신상까지 수상하는, 발롱도르 2관왕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